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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선택장애, 결정장애에 대하여

대학에서 멀어진지 한참되었지만 아직도 대학내일을 보고있다. 젊은 트렌드를 친절히, 또는 생생하고 따스하게 전달해주는 글을 접하고 싶어서이다. 주변에서 접할수 있는 글들은 대개 업무적이고 상투적인 딱딱한 글들이라 가끔은 이런 글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것도 좋긴하지만 현대인의 특성상 아무래도 인터넷의 글이 더 접근성이 좋다. 그리고 20대에 쓸수있는 휘발성의 감정적인 글을 보는것도 가끔 기분전환하는데 좋다. 아무튼 그런 측면에서 대학내일을 보는데, 최근에는 조금 맘에 들지 않는 방향의 글들이 올라오는 듯 하다. 젊음의 살아있음과 희망에 대해 노래하는것이 아닌, 절망적인 상황에 좌절하여 한탄하는 겉만 늙어버린 애늙은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러려고 챙겨보는게 아닌데.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쓰게 만든 원인은 바로 이글(선택 장애를 옹호합니다)이다. 선택장애를 옹호햬? 이건 뭐 거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수준이다. 최근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대한 인터넷의 평이 '청춘에 대한 희대의 사기극'정도로 인식되면서 꼰대세대를 까기위한 좋은 재료로 사용되는것 같은데, 그런 욕을 들어먹는 와중에도 말만 약간바꾼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식의 창작물이 인기를 얻는것을 보면서, 역시 어쩔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전자는 '청춘이고 가진것이 없으니 노오력을 해야한다', 라는 느낌이었다면, 후자는 '청춘이고 가진것이 없으니까 어쩔수없잖아?' 하는 느낌이다. 현재상황을 인식하는것은 비슷하지만 미래에 대한 대응방법이 다르다. 개선의 의지는 없고 그저 자기합리화에 빠져버린다.


선택장애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비해 선택지가 현저히 많아진것이 원인이라고 하는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결정장애를 ‘지연행동(procrastination)’으로 정의한다. 너무 많은 정보와 기회에 노출돼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서구 심리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메이비족(Generation Maybe)’이라 부른다." 물론 맞는것 같다. 그리고 지난 글에서도 적었듯, 옛날에 비해 선택지가 많아서 한곳에 집중할 수 없고, 그래서 (역량의 총합은 비슷하지만 분산이 되기때문에) 기대치 이하의 성과를 보이게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고, 그런 우울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생각된다. 요즘은 젊은이들에게 바라는것이 너무 많다. 대내외 성적도 잘받아야 하고 대내외 활동도 열심히해야한다. 그러면서도 spider map을 가득채우는 사람이 훌륭한 인재로 인정받는다. 어짜피 사람은 많으니 최고의 캐릭터만 가져가겠다. 하는 느낌이다. 그럼 회사가 잘못했네? 


그건 아닌것 같다. 인터넷과 세계화가 이런 성향을 만들어낸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저 글만봤을때는 글을 쓸필요가 없었는데, 다른 인풋이 있었기때문에 두개가 시너지를 내서 트리거를 만들어냈다. 뭐냐면, 대도서관의 젤다의 전설 게임플레이 동영상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기 떄문이다. 대도가 열심히 플레이를 하는데 채팅창에 별의별 이야기가 올라온다. '거기로 가면 안돼요 아이템 저기에 뭐있어요 이렇게 하시면 돼요...' 물론 방송에서 진행자가 헤메고 하면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 그래서 스겜을 위해서 그런것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양상이 인터넷 방송에서 뿐만 아니고 현실세계에서도 보이는것같아서 짜증이 난다. 주변에 훈수두는것들로, 옛날시대에는 부모친척만 있었겠지만 요즘은 부모친척친구들이 인터넷이라는 엄청난 잔소리저장소를 등에업고 등장한다. 인터넷신문기사, 유튜브 페이스북,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이렇게 해야한다, 안그러면 호구된다, 실패한 인생된다.' 우리는 그런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회사만이 최적의 자원을 찾는것이 아니다. 우리들도 이런 훈수들에 노출되고, '최적의 자원을 찾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세계화와 인터넷의 덕분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선택해야 할것들이 있고, 그 하나하나에 익숙해지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모범사례를 찾는것이 당연해보인다. 게임을 예로들자면 스타시절부터 시작된 '테크트리', 그리고 rpg게임류를 검색하면 나오는 직업별 아이템조합, 게임을 빨리 깨기위한 최적의 퀘스트목록, 숨겨진 아이템의 위치 등... (문득 며칠전에 스타얘기하면서 '저그면 당연히 4드론가야지' 하는 소리가 생각난다.) '승리/달성을 위한 최적의 자원분배.'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기고 성취해야 한다. 지면 바보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것은 멍청한짓이다. 지능 모자리들만이 실패한다.' 결국은 무한 경쟁사회에서 성취하고 살아남기위해서는 최적의 정보가 필요하고, 우리는 자신보다 권위있고 내가모르는것을 더 잘아는(듯한) 사람들의 말을 들을수밖에 없다. to not to be a loser.


먼길을 돌아왔는데, 결국 '실패/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것이 이런 선택장애, 결정장애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선택 못 하는 게 내 잘못이야? 고르는 족족 실패하는데! 선택 장애가 안 생기고 배겨?”) 실패하지 않기위해 남들의 의견을 구하는 습관이, 결국 실패하게 만드는 선택장애를 이끌어내며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인터넷에 너무나 논리적이고 명확히 나와있기 때문에 이를 따를수밖에 없다. '1+1=2'이듯, '이렇게 이렇게 살아서 이렇게 되어야한다'는것이 명확히 제시된다. '토익 공모전 몇점 몇개를 채우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 '일본에 여행가서 여길가고 이걸 사면(=)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등식은 논리적이게 보인다. 하지만 대기업=행복, 자랑=행복 은 아니지 않은가? 아마 f(대기업)=행복, 또는 f(f(대기업)+f(자랑))=행복처럼 (이때 f()는 신경망 블랙박스다) 더욱 심오하고, 또한 등식으로 표현가능하지 않은것이 행복일텐데 사람들은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는것 같다. 게다가 행복이라는건 주관적인것이잖아?


'성취=행복' 이라는 공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취∈행복일 뿐이다. 그런경우는 별로없겠지만 잃음으로써 얻는 행복도 존재한다. 그런데 더 생각해볼것은, "성취나 상실이라는 '종결된 결과값'만이 꼭 행복이라는 등식에 들어갈 수 있는 인자인가?"라는 것이다. 뭔가를 진행하는 과정,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들도 행복의 등식에 들어갈 수 있지 아닐까? 저 글의 예를 들어서, 간장불고기냐 고추장불고기냐를 결정하는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간장불고기를 선택했다면 간장불고기의 간장맛을 느끼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또는 만족스럽지 않은 고추장불고기를 먹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된 선택에 대한 한탄을 하며 (관심종자?ㅋㅋ) 행복해할 수도 있다. 젤다가 맘에드는점은 굳이 레벨올리기나 퀘스트 깨기같은 성취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아기자기하게 꾸미거나 돌아다니거나하는 컨텐츠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순간부터 이런 과정들에서 행복감을 얻게되는 노하우?를 조금씩 쌓게되었다.


며칠전에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라는 음악극을 보았다. (드디어 여유가 좀 생겨서 관련해서 조만간 글을 쓸 예정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그렇게 훌륭한 음악극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극을 감상한 어떤 한국사람은, 외국사람이 몇년전에 남긴 리뷰글을 찾아내 '내시간을 돌려줘!'라는 리플을 남겼다. 결과로봤을때는 불행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음악극의 과정에서 참 많은것을 느꼈고 행복했다. 그런 과정속에서 행복감을 찾을 수 있었던데에는 예민한 감수성이 한몫 했던것 같다. 음식을 먹는것도 마찬가지. 맛집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식감과 다른곳에서 느낄수없는 그집만의 특색을 찾아내는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자체가 좋지는 않아도 그런 새로운 식감을 찾을 수 있고 그런 경험을 한다는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감수성을 키우고 넓혀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새로운 모험을 한다.


나는 이런 감수성을 키울 여유나 기회가 없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안타깝다. 누가 갔다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야겠고, 맛집이라고 하니까 우루루 몰려간다. 여행을 가더라도 사진찍는데 정신이 없고 물건사오는것을 여행의 목적으로 생각한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놓치는게 많아보이는데, 그런것을 설명하려고 하더라도 이미 고정되어있는 마음과 문화는 변화시키기 쉽지않다. 그런데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향유하고있는 우리세대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것 같아서 안타깝다. 나는 내 자식에게는 이런 감수성을 물려주고 싶다. 그리고 실패할 수 있는 용기도 물려주고 싶다. 이 두 유산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돈보다 더 귀한 유산이라 생각한다.


다시 선택장애 이야기로 돌아와서.. '예민한 사람이 선택장애가 있다.' 라는 말은 '쓸데없이 까다롭고 겁많은 사람이 선택장애가 있다.' 라는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 오히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은 자신의 주관이 있기때문에 선택장애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더욱 좋아하는 논리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을 쓰자면)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은 겁쟁이다.' 라고도 할수 있겠다. '나 겁쟁이요', '알고보면 너도 겁쟁이요'하는 말이 과연 자랑스러운 말이고 듣기 좋은 말일까? 하기야 요즘은 분위기상 그럴수도 있겠다..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내자!!'라는 말을 하면 괜히 꼰대가 되어버릴것 같은 분위기다. 결국, '사회구조적 병폐가 우리세대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시스템이 잘못한거죠, 우리가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남탓. 이것이 모두가 원하지만 전혀 해결책이될 수 없는 결론일것 같다. (몇몇 정치세력은 이것을 너무나 잘아는듯하다. 마침 오늘은 지방선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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