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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음을 추구하기

일이 밀릴정도로 너무 바쁜 요즘이라 글쓰는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지만 어떤 블로그의 글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하여 짧게나마 글을 쓴다. 글의 요지는 사람의 모든 행동은 '기분좋은것'을 추구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지만 요즘 일어난 일들과 엮어서 쓰고 싶어졌다. 시간에 쫒기는 상황이기 떄문에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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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글을 쓴다. 여태까지는 왜 글을 쓰는지 알지 못한채, 그냥 생각나는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글을쓰고 있었는데, 요즘같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는 상태가 되다보니 왜 그래왔는지 알게되었다. 만약 상황이 한가지씩만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에 모든 집중이 쏠려있기 떄문에 금새 상황이 정리되고 핵심을 파악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상황을 겪으면 머리속에 당시 상황에 대한 데이터들이 마구 쌓이게 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혼돈상태를 싫어하고 단순한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머리속을 차지하는 상황이 빠른시간내에 말끔히 정리되고, 핵심만 남긴채 나머지 곁가지들이 머리속에서 wipe out된다. 하지만 만약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되면 여러갈래의 실타래가 온통 엉킨상태로 머리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통제 가능한 수준을 벗어난다면 (한개의 실타래가 엉킨건 풀기 쉽지만 여러개가 엉켜있을떄라면 난이도는 지수적으로 증가된다) 자포자기 상태가된다. 요즘말로 번아웃 상태가 되는것이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서, 글을 작성한다는것은 한가지 주제에 집중하는데에 도움을 준다. 글쓸때 만큼은 그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것은 덤이다. 사람은 몰입할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당시에는 다른 것을 신경쓸 필요가 없기 떄문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문제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매우 유익한 활동이다. 바쁘더라도 의식적으로 글을 작성하는것을 습관화 해야겠다.

 

2. 나는 음악을 듣는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본질은 '이해가능한 형식속에서 약간의 뒤틀림/예외성 을 즐기는것' 으로 생각한다. 너무 파격적인 음악은 난해하여 즐길 수 없고, 너무 뻔한 음악은 재미가 없다. 이번주에 풀 재택근무를 하면서 월디페를 틀어놓고 일을했는데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들으면서 느낀건, 훌륭한 DJ는 이러한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본다. 아직 AI기반 DJ가 나올수 없는것은 (물론 조만간 나오겠지만) 위트있게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며 적당하게 예외를 추구하는 (밀당) 알고리즘을 구현하기가 어렵기 떄문이다. 모든 예술은 이러한 위트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작풍을 모사하고 현실적으로 장면을 복제하는것은 알고리즘으로 쉽게 구현하능하겠지만, 위트있게 한소끔 꼬집는 행위를 구현하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러시아나 프랑스 음악을 좋아하는것 또한 여기에 있다. 우선 문화적 색채가 내 주변의 문화와는 많이 다르기 떄문에 기본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적당히 세련된 느낌이라 불쾌하지 않다. 그리고 기존 질서와는 다른 획기적인 시도들이 중간중간 이루어져 지루하지 않고 그 적당하면서 대담한 시도에 감동한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행위중에 공감이 있는데, 이건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속감과 안정감 때문일것이다. 음악적 공감을 말로 표현하자면, '오, 나는 너의 그 해석, 그 위트에 공감해' 정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떄문에 같은 곡이라도 어떤 연주는 불쾌하고 어떤 연주는 심금을 울린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기존의 것들을 단순하게 잘 따라하는게 아니고, 기존의 것들을 잘 이해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과감하게 제시하고, 이를 공감가능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기존의 것들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인간이라면 그럴순없지만) 100% 만족하여 표현하게 된다면 그것은 에술가라 할 수 없고 단순한 재생기에 불과하다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술가는 기존의 관습에 대비해 자신만의 색채를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천재 예술가라 한다면, 아마 여러 기존 방식위에 자신의 개성을 얹는 시도를 하다가, 그 형식에 너무 답답한 나머지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것으로 상상한다. 아마 비운의 예술가는 사람들이 1-2-3-4-5 순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사조를 1-2-5로 압축한채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직업을 정할때 '너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마 이 말은 사실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데에는, 남들도 수긍할 수 있을만한 원인이 있을것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에는 빠진것이 있는데... 남들이 무슨이유로, 어느정도로 좋아할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좋아는 하지만 돈을 쏟을 만큼은 좋아하지 않거나 혹은 너무 소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경우에는 좋아하는 일이 돈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그것은 취미정도가 적합하다. 돈이 안되어도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는것은 정말 무책임한 이야기이다.

 

고물을 주워서 (수집욕 충족) 나름대로 조립해서 조각을 만드는것은(창작욕 충족) 직업으로 적합할까? 물론 만드는 사람은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겠으나, 보는사람은 그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 볼수 있기 떄문에 결과물로만 평가받을수밖에 없다. 결과가 상대방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던질 떄 이는 훌륭한 직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환경문제를 생각하도록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혹은 기발한 조합으로 조각을 만든다면 충분히 훌륭한 에술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고물 조각으로 환경문제을 언급하는 행위가 너무 진부해졌거나 또는 누구나 상상가능한 형태로 뻔하게 조립되었다면 그것은 메시지를 주지못한다. 이런식으로, 행위가 본인에 초점을 두며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는 단순작업이라면 취미가 맞고, 타인을 생각하며 기발한 (이를 위해서 창작의 고통이 필요하겟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직업으로 하는게 맞아보인다. 

 

예술가의 힘든점은 매번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번 반짝하고 등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창의력이 지속적으로 나오기는 어렵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이 서로 자신들을 보라고 개성을 뽐내고 있는 요즘같은 시기에... 대신에 방법은 있다. 기존의 많은 법칙들을 숙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창의력과 위트를 발휘하여 조금만 비틀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정도가 좋은듯 하다. 그렇기 떄문에 다양한 경험과 고독히 공부하고 연습하는 시간이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업을 포함하여 예술가의 덕목으로는 집중력과 호기심, 타인과의 공감력, (기존관습에서 살짝 비트는)위트, 자신만의 개성, 표현력 이 필요하다 

 

4. 만나면 기분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기 떄문이다. 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는 논리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냥 동물적 DNA가 그렇게 시키는 같은데 이게 은근 무시못할 힘이다. 그런 동물적인 감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떄문이다. 살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아무리 논리적인척해도 인간은 결국 동물이라서 이런 감각에 휘둘릴수밖에 없다는것이다. 또한 그렇기 떄문에 아주 고대부터 내려온 인간의 원리가 변하지 않고 지금도 적용 될 수 있다는것이다. 예를 들어 관상. 그리고 나는 거부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성형수술도 긍정적으로 본다. 

 

같이 있으면 기분좋은 사람이면 사귀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떄문에 계속 같이있고 싶기 때문이다. 기분을 좋게 하는데에는 외모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언변이나 지식, 또는 냄새나 습관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중에서 1차원적인 외모나 냄새들은 직관적으로 기분을 좋게하지만 계속보면 너무나 익숙해져서 (싫어지지는 않지만) 지루해 진다. 하지만 언변이나 지식들과 같은 2차원적인 요소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변화될 수 있다. 뻔한 사람은 재미가 없는데 반해, 항상 새로운 면이 있는 사람은 기분을 좋게한다. 아재개그를 들으면 기분나쁜 이유는 너무나 정형화된 방식으로 위트를 시도하기 떄문이다. 

 

잘생겨서/예뻐서 결혼한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초반 몇년은 좋겠지만 외모에 지루함이 느껴지면 다른 이성을 찾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안정적인것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것을 동시에 추구하는 존재이기 떄문이다. 딩크족이 아쉬운부분은 뻔한 사람들 두명이 만나서 수십년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딩크를 추구한다는것은 그만큼 개성이 강하다는 반증이라서 뚜렷한 취향이나 취미를 서로 공유하겠지만, 아니라면 그냥 동거인 하나 붙여사는것 그이상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측면에서 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벤트를 제공하는 제3의 존재로써 결혼생활에서의 지루함을 제거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리하면 꿈같은소리라고 뭐라하는데, 새로움에는 언제나 고통이 뒤따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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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디페에서 예쁘지만 실력없는 DJ를 보고 짜증나서 순식간에 긴 글을 썼다. 아무튼 여러가지 의미로 우리는 기분좋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어떤일을 할떄 기분좋음을 느끼는가, 그 일이 남들에게도 기분좋음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삶의 큰 부분이 명확해질 수 있을것 같다. 이 또한 기분좋음의 방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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